공인문소김씨는 영양남씨의 손부이며, 일찍 남편(류성룡柳成龜)이 죽게되자 그 시신을 집으로 모시기 위해 낙동강을 건너던 중 사공이 삿대마저 잃는 강풍을 만나자, 김씨는 시신을 안고 함께 순사를 결심하니 마침내 순풍이 불어와 무사히 도강하였으며, 사람들은 이를 하늘이 감동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장례 후 순사하려 함이 주위의 만류로 무산되자, 몸과 마음의 병이 들어 위독한 중에도 남편 곁으로 가려는 마음에서 웃는 얼굴로 죽음을 맞이하였으며,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정표의 명에 의하여 정려비를 조비(祖비)의 정려각 내에 함께 세웠다.
한 가문에서 한 분의 순사도 흔치 않은데 정부인영양남씨와 공인문소김씨가 나란히 열녀가 되었으며, 그 후 세월이 흐름에 따라 외지에서 비각훼손이 심하여 1989년에 석현리에서 하회마을로 정부인의 정려각 및 비와 함께 공인 정려비를 하회로 옮겼다.
순사란 나라 또는 왕이나 남편을 따라 죽는 것으로서, 남편이 죽은 여인을 미망인(未亡人)이라 하는 것도 아직 죽지 못한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비롯된 명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