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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하회 별신 가면무극 대사는 하회 현지에서 생존자들에 의하여, 70년 전, 31년 전, 18년 전 3회의 행사를 조사하여 종합 채록한 것이다. |
② |
세칭 하회별신굿이라고 하는 것은 경상북도 안동군 풍천면 하회동에서 옛날에 행하던 원시종교의 제전행사인데, 매년 1차 음 정월 초순에 동후(洞後) 고부상(高阜上)에 있는 성황당, 국신당, 삼신당 등에 순차로 제례를 집행할 때 의례적인 탈놀이(假面劇)을 하였던 것이다. 우리나라의 차종(此種)의 제전은 멀리 <삼국지(三國志) 동이전(東夷傳)>에 보인 바 부여의 영고, 고구려의 동맹, 예(濊)의 무천 등이 그것이니, 부여에서는 12월, 고구려에서는 10월에 각각 제천국중대회(祭天國中大會)를 하여 연일 음주가무하였고, 한(韓)에서는 5월에 하종(下種)을 마치고 한 번 10월에 농절(農切)을 마치고 한 번 연 2차 집행하였던 것이다. 주사신(主祀神)은 다 천신(天神)으로 되어 있으나, 고구려에서는 대옥(大屋)을 세워 귀신을 제사하고 또 영성사직(零星社稷)을 제(祭)한다 하였으며, 또 동국(東國)의 수혈(隧穴)에서 수신(隧神)을 맞이하여 목수(木隧)를 신좌(神座)에 두고 제사하였다. 그 외에도 부여신(扶餘神), 등고신(登高神)이라는 류화(柳花), 주몽(朱蒙) 모자(母子) 또는 말하기를 기자(箕子), 가한등신(可汗等神)을 제(祭)함도 제기록(諸記錄)에 산견(散見)하며, 한(韓)에서는 "국읍(國邑)에 각인(各人)을 세워 천신(天神)에 주제(主祭)하여 천군(天君)이라 이름하고 또 제국(諸國)에 각각 별읍(別邑)을 두어 소도(蘇塗)라 이름하고 대목(大木)을 세워 영고(鈴鼓)를 달아서 귀신을 섬긴다" 하였으니, 대개 천신(天神)을 주신(主神)으로 하고 제자연현상(諸自然現像)을 신(神)으로 제(祭)하였던 것이다. 이제 하회별신제의 사신(祀神)은 각각 국신당은 천신(天神), 삼신당은 환인(桓因), 환웅(桓雄) 단군(檀君)의 삼신(三神), 성황당은 토지수호신(土地守護神)일 것이다. 타처(他處)에서는 국신당, 곧 삼신당 1개소뿐인데, 이것들이 따로 있음은 연구를 요한다. 신역(神域)을 부락 외에 따로 둠도 별읍(別邑)이란 말에 일치되고, 또 굿을 할 때 "성황대"라는 4, 5장(丈)의 대목(大木)을 세워 가장 신성시한 신령(神鈴)을 전해옴도 "입대목현령고사귀신(立大木懸鈴鼓事鬼神)"이란 말과 일치된다. 신에 바친 악무(樂舞)로서는 <동이전>에 "기무 수십인 답지저앙 수족상응 절주유사탁무(其舞 數十人 踏地低昻 手足相應 節奏有似鐸舞)"라 하였음이 바로 남도의 칭칭놀이로 남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뒤에 신라 진흥왕 2년(AD 551) 고구려의 혜량법사(惠亮法師)가 와서 팔관회(八關會)의 법을 시작하였으니 관(關)은 금폐(禁閉)를 의미함이라 팔관(八關)은 불살생(不殺生), 불투도(不偸盜), 불사음(不邪淫), 불망어(不妄語), 불음주(不飮酒), 부좌고광대상(不坐高廣大床), 불착화?영락(不着華?瓔珞), 불습가무기악(不習歌舞妓樂)이다. 이 팔죄(八罪)를 방지할 목적으로 가면극을 한 것이 제전행사의 탈놀이의 시작인 듯하다. 이것은 확실히 종래의 민족신앙에 불교의 계명을 합체시켜 놀음 자체가 민중교화를 조화시켜 종교의 홍도(弘道)를 도모한 것으로 생각된다. 고려시대 역시 태조의 훈요십조(訓要十條)에 "연등이사백불, 팔관이사천영산삼용신(燃燈以事百佛, 八關以事天靈山三龍神)"이라 하여, 국가적 대제전으로서 연등(燃燈)은 정월 15일이었다가 뒤에 2월 15일로 하고, 팔관(八關)을 11월이나 서경에서는 10월로 하였다. 이조에 와서 유교존숭의 결과, 연등, 팔관은 다 거의 폐하였으나, 연등은 4월 8일 불교에서만 하고, 팔관은 연말구나행사(年末驅儺行使)로 궁중에서 거행하였으며, 지방에서 하는 별신굿은 대개 정월 15일에 행하였다. 별신은 유교 관념에서 잡신을 의미함인지 혹은 지방이니까 본신(本神)이라 부르지 못함인지 알 수 없다. |
③ |
하회별신가면무의 특이한 점은, 탈을 다른 곳에서는 그때마다 만들어 쓰고, 쓰고 나서는 곧 소각하는데, 하회의 가면은 세세상전(世世相傳)함이다. 현재의 것은 이조에 들어서 만들지 않았음이 분명하며, 그 조각의 솜씨 차림도 고려 이전으로 생각된다. 탈 12개 중 3개를 잃어버리고 현재 9개가 남아 있으며, 흥행방법도 상전(詳傳)못하나, 살생의 계(戒)로 백정, 망어(妄語)의 계(戒)로 초랭이, 부좌고광대상(不坐高廣大床) 즉 오만(傲慢)의 계(戒)로 양반, 각 인물이 등장하여 사회의 불미로운 이면상(裏面相)을 소재로 하여 관중들로 하여금 반성을 촉구하는 풍세(諷世)적인 것이며 연기의 내용도 신축성이 있었는 듯하다. |
④ |
가면 제작자에 대한 전설이 있다. 고려 중엽 이전까지 하회동에 허씨들이 세거(世居)하였는데(고려말엽까지 안씨, 이조 초부터 류씨가 세거하여 왔다.) 허 도령이 있었다. 허 도령(이름 미상)은 꿈에 신에게서 가면 제작의 명을 받아 작업장에 외인(外人)이 들어오지 못하게 금삭(禁索)을 치고 매일 목욕재계하여 전심전력을 경주하여 가면을 제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허 도령을 몹시 사모하는 처녀가 있었다. 처녀는 연연한 심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하루는 허 도령을 얼굴이나마 보려고 휘장에 구멍을 뚫고 애인을 엿보았다. 금단(禁斷)의 일을 저지른 것이다. 입신지경(入神地境)이던 허 도령은 그 자리에서 토혈(吐血)을 하고 숨을 거두었다. 그러므로 열 두 번째의 "이매"탈은 미완성인 채 턱없는 탈이 되고 말았다. 그 후 마을에서는 허 도령의 영을 위로하기 위하여 성황당 근처에 단을 지어 매년 제를 올린다. |
⑤ |
주민들은 별신 행사시 외에는 가면을 못 보게 되어 있으며, 부득이 보아야 할 경우에는 신에게 고하고 난 후이라야 한다. 가면을 함부로 다루면 탈(變怪)난다고 주민들은 두려워하고 있다. 별신 행사 때에도 광대들은 별신제의 15일간은 한 장소에 합숙하며, 각자의 집에 못 가는 것은 물론 가족과 회견도 엄금하고 있으며, 특히 여자를 가까이 하면 변괴가 일어난다는 데에서 엄수하고 있다. 우연한 부합인지는 모르지만, 별신 행사시 돌연히 말을 못하는 자, 신열로 인하여 위독케 되었던 자가 백약의 효(效)를 못 보다가도 별신 행사시 기도하여 잊어버린 듯이 완쾌하는 비과학적인 사실을 필자도 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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⑥ |
탈의 의상 기타의 종류는 다음과 같다.
명칭 |
개수 |
구조 |
비고 |
신령(神鈴)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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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황대, 성주대, 오색포 |
주지 |
2 |
입을 움직여서 딱딱 소리를 냄 |
붉은 보로 전신을 가린다. |
각시 |
1 |
턱이 부동(不動) |
처녀의 옷차림 |
중 |
1 |
턱이 움직임 |
지팽이를 들고 고깔 가사를 착용 |
초랭이 |
1 |
턱이 부동(不動) |
바지 저고리 위에 붉은 쾌자를 입고 두 어깨와 허리에 걸쳐 청홍색 띠를 띰 |
양반 |
1 |
턱이 움직임 |
부채를 들고 도포와 정자관(丁字冠) 착용 |
선비 |
1 |
턱이 움직임 |
담뱃대를 들고 도포, 갓을 착용 |
이매 |
1 |
턱이 움직임 |
평민계급의 남자복색, 벙거지 착용 |
부네 |
1 |
턱이 부동(不動) |
젊은 부인 복색 |
백정 |
1 |
턱이 움직임 |
천인계급 복색에 3색 띠를 하고 도끼와 칼을 가짐 |
할미 |
1 |
턱이 부동(不動) |
평민계급의 노파복색, 쪽박을 가짐 |
떡다리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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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소실되었음 |
별채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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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소실되었음 |
총각 |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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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소실되었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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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벙거지, 가사 의상, 소도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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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이 현존하는 가면이고 총각, 별채, 떡다리 3개는 분실하였는데, 대구시에 있는 이경성 씨 증언에 의하면 해방 전에 거주하던 일본인 한학자 河野長三郞이란 자가 말하기를 八波羨吉이가 가면을 일본으로 가지고 갔다고 한다. 이 사실에 대해서는 하회동에서는 옛날에 별신굿을 할 때 인근에 있는 병산동(屛山洞)에서 가지고 갔다는 소문이 있기에 필자가 경찰에 의뢰하여 병산동에 있는 가면을 찾아보았으나 그것은 하회가면을 모방해서 만든 것에 불과했다. 혹자는 말하기를 일본인이 가져갔다고 하나 그에 대한 아무런 증거가 없고 설령 일본인이 가져갔다 하더라도 일본인이 직접 가져간 것이 아니고 간접으로 입수하였을 것이라고 한다. 그리고 가면의 명칭이 시대에 따라 변하였는데, 현재 백정 가면이 옛날에는 "희광이"였다는 것을 근간에 발견하였으니 양반, 선비의 가면 등도 구명(舊名)이 있었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극 내용도 시대의 변천에 따라 변하였을 것이다. 이 가면의 명칭이 이 지방 각 처에서 속담으로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면 "초랭이 쉬염(수염) 같다.", "초랭이 떨음한다.", "떡다리 같다>", "주지놀음하듯 한다." 등이 있다. 이걸 보아 별신가면행사가 옛날에는 하회동 뿐이 아니고 각지에 있었으며, 민중생활에 미치는 정신적인 영향도 컸으리라고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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⑦ |
하회별신가면무극의 내용은 양주산대가면극이나 봉산가면극과는 기본적으로 다르다. 양주, 봉산가면극은 오락적 흥행적인 체제를 갖추고 있으나, 이 가면극은 원시 민족종교의 제전행사로서 극의 각본이 일정한 것이 있는 것이 아니고, 과장은 일종의 식순처럼 정하여져 있으나, 대사는 신의 계시에 의하여 광대들이 신을 대신하여 그 시대의 불미로운 사회 이면상을 소재로 하여 연기를 하여 관중들로 하여금 각성시키며 반성을 촉구하는 민중교화의 목적을 가진 것이었다. 그러므로 광대의 무용은 고전무용의 테두리 안에서 즉흥적인 춤이었으며, 대사도 과장의 취지에 어긋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즉흥적으로 말하였다. 다른 하나의 특색은 놀이 도중에 수시로 어떠한 계급의 사람이든지 마음대로 광대는 훈계하고 희롱을 할 수 있는 특권이 부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 가면극에는 과장이란 말이 쓰이지 않고 있으나, 설명의 편의상 과장으로 나누어 별신 행사의 전문을 약기(略記)하였다. 끝으로 하나 안동군 풍산면 수동(壽洞) 인근 5개 동리에서는 해마다 "진법(陳法)별신놀이"라는 것을 행하여 왔는데, 이에 대하여서는 따로 발표의 기회를 가지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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